"예산만 축내는 기득권 정치 배격해야…"
대구 소상공인의 버팀목, 정영환 회장을 만나다
대구 소상공인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사비까지 털어가며 바닥부터 조직을 다져온 인물이 있다. 바로 정영환 대구광역시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이다. 대기업 유통 공채 출신으로 포항과 대구를 거치며 수많은 매장을 직접 운영했던 실전형 야전사령관. 할아버지가 독도 의용수비대 출신으로 사비를 털어 국토를 지켰듯, 자신 역시 소상공인을 위해 ‘피값’을 하겠다는 정 회장을 만나 대한민국 소상공인 운동의 민낯과 생존 전략에 대해 들었다
|
▲ 정영환 대구광역시소상공인연합회 회장 © 김용숙 기자
|
Q. 과거 이력을 보면 대기업 유통·영업 분야에서 아주 잔뼈가 굵으셨다고 들었다.
- 신발 패션 대기업인 에스콰이아(ESQUIRE) 출신이다. 1988년도에 중저가 캐주얼 브랜드인 ‘미스미스터’가 발족했을 때, 대구·경북·강원 지역 영업소장을 거쳐 서울 본사 영업 총괄까지 올라간 대구 지역 1호 공채 출신이다. IMF 외환위기 직전에 사표를 내고 제 사업을 시작했고, 포항과 대구를 오가며 의류, 유통, 소방, 환경·청소 용역 법인까지 직접 운영하며 매장을 7개나 굴릴 정도로 사업을 크게 일으켰다.
Q. 사업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셨는데 왜 굳이 골목상권 상인회장 자리를 맡으신 건지?
- 처음에는 도망 다녔지만, 대기업 출신이 들어와 체계를 좀 잡아달라는 상인들의 간곡한 요청에 상점가 상인회장을 10년 동안 맡게 됐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기가 막힌 민낯을 보게 됐다. 당시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 명목으로 수조 원의 정부 예산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그 엄청난 예산을 소수의 전통시장 기득권 세력들이 전부 독식하고 있었다. 정작 우리 골목상권이나 상점가 소상공인들은 전통시장 권력자들에게 줄을 서서 푼돈이나 빌려 쓰는 처지였다
|
▲ 정영환 대구광역시소상공인연합회 회장 © 김용숙 기자
|
Q. 현재 대구 지역 경제와 자영업의 체감 경기는 어떤지?
- 한마디로 '고사 직전'이자 '동성로의 대위기'이다. 대구는 타 대도시에 비해 제조업 기반이 약하고 서비스업과 자영업 비중이 극도로 높은 구조이다. 특히 대구의 중심이자 자존심이었던 동성로는 대구백화점이 무너지면서 유동 인구가 급감했고, 임대료 부담을 이기지 못한 상인들이 떠나며 공실률이 치솟고 있다. 인구 유출은 심각한데 대형 유통 자본의 공습은 계속되니 동성로를 비롯한 골목상권 전체가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다. 이런 상황일수록 지자체가 방파제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대구시의 행정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Q.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간의 예산 불균형 문제를 목격하고 어떻게 행동하셨는지?
- 진짜 영세한 골목상권 상인들을 대변할 조직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동성로 상인회를 비롯해 대구의 주요 골목상권 회장들을 만나 분리해서 당당히 우리 예산을 찾아오자고 설득했다. 그 길로 대구 8개 구·군을 샅샅이 돌며 골목상권 상점가 상인회를 조직화했다. 전통시장 측의 반발이 어마어마했지만 5~6년을 맨땅에 헤딩하듯 길거리에서 싸웠다. 이후 2020년 후반기쯤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삼고초려가 왔다. 법정 단체인 소상공인연합회야말로 모든 영세 자영업자를 법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최상위 법정 단체라는 확신이 들어 대구지회를 제대로 구축해 보자고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Q. '지역 지회장들의 중앙회장 선거 투표권 부여' 문제, 어떻게 보시는지?
- 현재 소상공인연합회 중앙회장 선거는 철저히 서울 중심의 업종별 단체(약 70여 개) 회장들의 투표로만 결정된다. 그런데 이 업종별 단체들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상당수가 회원도 몇 명 없는 이른바 '1인 유령 단체'이거나 회비조차 제 때에 납입하지 않는 단체들이다. 평소에는 조직 기여도가 거의 없는 자들이 3년마다 치러지는 선거 때만 되면 이권 줄대기를 하며 표를 행사한다. 반면, 우리 지역 지회장들은 정부나 중앙회에서 돈 한 푼 안 받고, 자기 사비를 털어 인건비를 내고 차량을 굴려 가며 현장에서 영세 상인 수만 명을 조직화해 놓았다. 그런데 우리 지역 조직들에는 중앙회장을 뽑을 투표권을 단 한 표도 주지 않고 있다. 노예처럼 부려 먹기만 하고 권리는 주지 않겠다는 독재적 발상이다.
Q. 정치권과 일부 세력이 투표권 갈등을 역이용해 소상공인연합회를 분열시키려한다는 의혹도 있던데?
- 음모론으로 치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 중앙회 체제하에서 지회 투표권 정관 개정안은 업종 단체 기득권 때문에 이사회의 문턱을 넘기 어렵다. 정치권에서는 이 한계를 정확히 알고 지회장들의 불만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지회장들에게 '중앙회에서 안 주니까 딴살림 차려서 나와라. 내가 전국연합회를 따로 만들어 줄 테니 법인 분리를 해라'고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들었다. 분열을 통해 자기 권력을 만들겠다는 그릇된 생각이다.
|
▲ 정영환 대구광역시소상공인연합회 회장 © 김용숙 기자
|
Q. 현장 소상공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경제적 문제이다. 대구 경제의 수장으로서 정치권이나 지자체에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싶은 정책이 있는지?
- '대기업 통신 3사(SKT, KT, LGU+)의 신규 가입 마케팅 상품권을 지역화폐로 강제 전환'하는 정책을 요구하려 한다. 철저히 마케팅 관점에서 접근하여 전국의 핵심 지회장들과 논의하려 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초고속 인터넷과 TV 약정 기간(3년) 만료로 인해 통신사를 변경하는 가구가 1년에 무려 700만 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통신사들이 신규 가입자 유치를 위해 가구당 최소 50만 원에서 70만 원 상당의 사은품으로 상품권을 뿌리는데, 연간 자그마치 4조원(추산치)에 달하는 마케팅 자금이 상품권 시장에 풀리게 된다. 그런데 이 막대한 돈이 지금 죄다 신세계나 롯데 상품권 등 대기업 유통 재벌 주머니로 고스란히 들어가고 있다. 골목상권은 그만큼 피해를 입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상품권이 아닌 지역화폐나 온누리 상품권으로 변경해서 뿌려달라는 얘기이다.
Q. 추산치라고 하지만 연간 4조 원의 자금이 지자체 지역화폐나 온누리상품권으로 풀린다면 효과가 대단할 것 같다.
- 정부 예산 깎였다고 소상공인 지원금 몇천억 원 편성하는 것보다 이 정책 하나 시행하는게 백배 낫다. 통신사 약정 사은품을 대기업 유통 상품권이 아닌, 해당 가입자가 거주하는 지역의 '지자체 지역화폐'나 온누리상품권 등 골목상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으로 지급하도록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4조 원의 돈이 매년 전국 골목상권, 구멍가게, 전통시장으로 다이렉트로 꽂히게 된다. 정부 예산 한 푼 안 쓰고 대기업의 마케팅 자금으로 소상공인을 완벽하게 살려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라고 본다. 우선 이번에 대구시장으로 취임하신 추경호시장님에게 강력하게 요청할 생각이다.
|
▲ 정영환 대구광역시소상공인연합회 회장 © 김용숙 기자
|
Q. 대형마트 의무휴업 평일 전환이나 새벽배송 문제와 상생 대안에 대해서는 복안이 있는지?
- 무조건 머리띠 두르고 막을 수 없다면, 실리적인 상생 조건을 명확히 걸어야 한다. 소비자의 권리를 무시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에서 10만 원 이상 구매한 소비자에게 라면이나 휴지 같은 대기업 사은품 대신 골목상권에서 쓸 수 있는 '5천 원권 온누리·지역 소상공인 전용 상품권'을 의무적으로 쥐여주게 유도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대형마트에 쇼핑하러 온 소비자가 5천 원짜리 상생 상품권을 받으면 집 앞 편의점이나 구멍가게에 와서 자기도 모르게 돈을 더 쓰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자금의 낙수효과이자 실리적인 상생 마케팅이라고 생각한다. 새벽배송도 마찬가지이다. 외식업자들은 새벽배송덕에 장보기가 수월해졌다고 좋아한다. 같은 동네수퍼나 외식업자나 같은 소상공인이면서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다. 그럴 바에는 새벽배송으로 전면 허용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지원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본다.
Q. 마지막으로 대구 소상공인연합회장으로서의 각오를 덧붙인다면?
- 저의 조부는 한국전쟁 직후의 혼란기 속에서 사비를 털어 배를 띄우고 군수 물자를 보급하며 우리 영토 독도를 외롭게 사수했던 '독도 의용수비대'의 핵심 주역이었다. 그래서 저는 '피값을 해야 하는 책임감'이 남다르다. 대기업의 탄탄한 직장을 버리고 야전 자영업자로 30년을 살아오며 돈 한 푼 안 나오는 소상공인연합회 지회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대기업과 거대 기득권 카르텔의 공습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영세 상인들의 방파제가 되어주고 싶다. 저는 오직 소상공인들이 대기업 자본 틈바구니에서 매달 연명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 예산을 따오는 데 제 남은 임기와 노력을 다할 것이다.
김흥수 기자 wsnews@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