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는 6∙25전쟁에 참전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김광수 육군 대위와 밴 플리트 美 육군 대장과 그의 아들 밴 플리트 2세 공군 대위를 '2026년 6월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김광수 육군 대위는 북진능선을 사수하고 전사한 육군 대위다.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의 김광수 대위는 1951년 12월 육군 소위(갑종장교 제8기)로 임관했다. 1953년 3월 중위로 진급하고 제9사단 제30연대 제11중대 선임 장교로 강원도 김화지역 북진능선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1953년 6월, 중공군은 정전협정 체결을 목전에 두고 군사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당시 제9사단이 담당하던 중부전선에 대규모 공세를 단행했다. 당시 김광수 대위는 선임장교 보직과 함께 화기 소대장직을 맡아 중부전선 오성산 근처 북진능선의 K고지를 방어하고 있었다.
중공군의 파상공격에도 부대원들과 결사적으로 진지 방어에 임했다. 하지만 수적 열세로 중대의 주진지가 적에게 점령되는 위기의 상황에 빠졌다. 하지만 김광수 대위의 지휘하에 K고지를 다시 탈환했다. 1953년 6월 김광수 대위는 적의 수류탄에 중상을 입었음에도 북진능선을 사수하고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1계급 특진(당시 계급 중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밴 플리트 美 육군 대장과 밴 플리트 2세 공군 대위는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다.
1892년 3월 미국 뉴저지주 출생의 밴 플리트(James A. Van Fleet) 장군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제1차 세계대전 참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벌지 전투'(Battle of the Bulge)에서 크게 활약했다. 1951년 4월 11일, 미8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6∙25전쟁에 참전했다. 한국 도착 후 승산이 없으니 동경으로 철수해야 한다는 참모의 건의에도 승리를 향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 특히 중공군의 공세를 막고 여러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하며 전선을 38도선 북쪽으로 북상시키는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장군의 아들 밴 플리트 2세(James A. Van Fleet Jr.) 대위도 6∙25전쟁에 자원해 B-26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1952년 4월 4일 서해 연안 해주 인근에서 폭격 임무 중 실종했다. 당시 27세였던 외아들의 실종 소식을 접한 이후에도 밴 플리트 장군은 1953년 2월까지 제8군 사령관으로서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
밴 플리트 장군은 6∙25전쟁 중인 1951년 10월 육군사관학교가 4년제로 다시 개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 정예 장교 양성의 토대를 마련하고 1953년 2월 제8군 사령관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복귀했다. 1957년 한∙미 우호 증진을 위한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를 설립하는 등 한·미동맹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에 오늘날 한·미 동맹에 공헌한 이에게 장군의 이름을 딴 '밴플리트상'을 수여하고 있다.
최인갑 기자 wsnews@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