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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전사 故 김수덕 일병 유해 73년 만에 귀환
기사입력: 2024/11/06 [16:04]   월드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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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갑 기자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 단장 이근원)은 2018년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덕갈고개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 신원을 6∙25전쟁 당시 '횡성 전투'에서 전사한 故 김수덕 일병으로 확인했다. 

 


2024년 11월 6일 故 김수덕 일병은 7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형의 유해라도 마주하고자 유전자 시료 채취 후 기다렸던 동생은 신원 확인 3개월을 앞두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故 김수덕 일병의 유해 신원 확인 과정을 공개했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전문 발굴병력이 전사연구와 참전용사 증언을 토대로 2018년 5월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덕갈고개 일대에서 유해 발굴 중 경사면에서 오른쪽 팔뼈를 최초 식별했다. 이어서 고인의 오른쪽 정강이뼈와 종아리뼈를 추가로 수습했다.  

 

이후 2020년 2월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 기동탐문 간 고인의 남동생 김종덕(1944년생) 씨를 찾아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지만 당시 유전자 분석 결과로는 전사자와 유가족 간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에 멈추지 않고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과거 유전자 분석이 이뤄진 유해 중에서도 특히 전사자가 다수 발굴된 지역의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를 더 정확한 최신 기술로 재분석했다. 결국 2024년 10월 발굴한 유해와 유가족 김종덕 씨가 형제 관계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형의 유해라도 찾기를 기다려온 김종덕 씨는 반가운 소식을 듣지 못하고 2024년 8월 신원 확인 3개월을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한편 고인은 1932년 8월 경상북도 청도군에서 4남 5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고인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총명해 집안 농사를 도우며 학업에 매진해 청도 모계중학교를 다녔다. 이후 6∙25전쟁이 발발하자 나라를 지키기 위해 1950년 9월 대구의 제1훈련소에 자원 입대했다. 

 

유가족 증언에 따르면 입대 전 고인은 "어머니, 저는 이제 입대하면 다시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라고 눈물로 인사하며 고향을 떠났다.

   

고인은 국군 제8사단에 배치되어 많은 전투에 참전하던 중 '횡성 전투'에서 중공군과 맞서 싸우다 1951년 2월 7일 18살의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 횡성 전투는 1951년 2월 중공군의 제4차 공세 때 횡성군 일대에서 전개된 전투다.

 

▲ 2024년 11월 6일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故 김수덕 일병의 생가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가 열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호국의 영웅' 故 김수덕 일병 귀환 행사


국방부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2024년 11월 6일 경상북도 청도군 유가족의 자택(전사자 생가)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진행했다. 

 

고인의 신원 확인 소식에 유가족 대표인 막냇동생 김종길(1948년생) 씨는 "어머니께서 생전 수덕 형님이 북한에 살아계실 거라고는 말씀하셨는데 강원도 횡성에서 전사하셨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라며 "우리 형제가 모두 형님을 찾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종덕 형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 이 기쁜 날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 늦게라도 형님의 유해를 찾아주신 국가와 국방부에 감사드리며 이제라도 형님을 따뜻한 국립묘지에 안장해 정중히 모시고 싶다"라는 소회를 밝혔다.

 

최인갑 기자 wsnew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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